🪨 선사 시대
한반도에는 수십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사냥꾼에 이어 빗살무늬 토기를 만든 신석기 시대 마을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돌무덤인 고인돌을 수만 기나 세운 청동기 시대의 벼농사 공동체가 나타났습니다.
고조선부터 오늘까지 한국 역사를 확인합니다.
한반도에는 수십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사냥꾼에 이어 빗살무늬 토기를 만든 신석기 시대 마을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돌무덤인 고인돌을 수만 기나 세운 청동기 시대의 벼농사 공동체가 나타났습니다.
고조선('옛 조선'이라는 뜻으로, 뒷날의 조선 왕조와 구별하는 이름)은 역사 기록에 나오는 한국 최초의 나라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전설 속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웠다고 전하며, 역사학자들은 한반도 서북부와 그 북쪽 지역에 걸쳐 기원전 108년까지 이어진 청동기 시대의 나라로 봅니다.
약 7백 년 동안 북쪽의 고구려, 서남쪽의 백제, 동남쪽의 신라 세 나라가 남쪽의 가야 연맹과 함께 한반도에서 경쟁하고 교류했습니다. 왕릉과 산성이 세워지고 불교가 들어왔으며, 이웃 나라들과 활발히 교류한 시대입니다.
고구려는 삼국 가운데 가장 큰 나라로, 약 7백 년 동안 한반도 북부와 그 북쪽의 넓은 땅을 다스렸습니다. 화려한 고분 벽화, 돌로 쌓은 산성, 활기찬 왕들로 기억됩니다.
백제는 7백 년 가까이 한반도의 기름진 서남부를 다스렸으며, 세련되고 우아한 예술로 이름났습니다. 바다를 무대로 한 나라로서 중국 남조와 교류하고, 불교와 문자, 여러 기술을 일본에 전했습니다.
신라는 동남쪽의 작은 나라에서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한 나라로 성장했고, 천 년 가까이 경주를 수도로 지켰습니다. 신라 무덤에서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금 공예품들이 나왔습니다.
가야는 남쪽 낙동강 유역의 작은 나라들이 모인 연맹으로, 끝내 하나의 왕국으로 합쳐지지 않았습니다. 철이 풍부해 여러 지역과 널리 교역했으며, 6세기에 신라에 통합되었습니다.
668년 이후 신라는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 대부분을 다스렸고, 오랜 평화 속에 불교 미술과 학문의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수도 경주는 당시 손꼽히는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30년 뒤인 698년 대조영이 세운 나라로,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 나라로 여겼습니다. 한반도 북부와 그 북쪽의 넓은 땅을 다스렸으며, 남쪽의 통일신라와 함께 한국 역사학자들이 남북국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를 이룹니다.
918년 장군 왕건이 고려를 세웠고, 936년에는 분열되어 있던 한반도를 다시 통일했습니다. 고려는 500년 가까이 이어졌으며, 상인들을 통해 해외로 알려진 그 이름은 영어 ‘Korea’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고려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 가지 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 비취색 청자, 8만 장이 넘는 목판에 새긴 팔만대장경,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입니다. 모두 고려의 뛰어난 공예와 기술 수준을 보여 줍니다.
1231년 몽골 제국의 군대가 고려에 들어왔고, 1232년 조정은 강화도로 옮겨 40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화친이 이루어진 뒤 고려는 왕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약 100년 동안 원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1392년 이성계 장군이 세운 조선은 한양(오늘날의 서울)을 도읍으로 약 50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세계 역사에서도 손꼽히게 오래 지속된 왕조이며, 오늘날 방문하는 궁궐과 성곽, 한옥 마을 대부분이 이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임금으로 꼽힙니다. 32년의 재위 동안 학자와 발명가를 후원하고 농업을 발전시켰으며,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도 읽고 쓸 수 있도록 1443년 한글을 만들고 1446년에 반포했습니다. 한글은 만든 사람과 시기, 원리가 분명히 알려진 세계에서 드문 문자입니다.
조선은 학문, 충, 효, 바른 예법을 중시하는 성리학의 이상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선비 관료들이 나라를 다스렸고, 제사에서 어른 공경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한국인이 지키는 많은 관습이 이 시기에 자리 잡았습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보낸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했고, 1597년에 두 번째 침략(정유재란)이 이어졌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 의병, 명나라 군대의 도움으로 조선은 일본군이 물러간 1598년까지 버텨 냈습니다.
18세기에 영조와 정조는 조선에 안정과 문화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퍼졌고, 그림과 문학, 음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문을 닫는 정책에서 벗어나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고 항구를 열었습니다. 이후 근대 학교와 병원, 개혁이 등장했지만 정치적 혼란과 대규모 농민 봉기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첫 황제가 되어, 한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알렸습니다. 대한제국은 13년 동안 철도·전기·전차·전화·서양식 건물 등 근대화를 추진했으나, 1910년 일본에 병합되었습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은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았으며, 서울에 있던 조선총독부가 이를 맡았습니다. 이 35년 동안 도시와 교통, 일상생활이 빠르게 바뀌었고, 한국인들은 자신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지키기 위해 힘썼습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국내외의 한국인들은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힘썼습니다. 1919년의 평화적인 3·1운동과 같은 해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현대 한국의 바탕이 되었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지금도 이 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945년 한국은 광복을 맞았지만 한반도는 38선으로 나뉘었고 남북에 서로 다른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한국전쟁(1950–1953)은 온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고, 평화조약이 아닌 휴전으로 끝나 지금도 한반도를 가르는 선이 남아 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평생 독립운동에 힘쓴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농지개혁과 교육, 한미동맹 등 이 시기에 다진 기틀이 훗날 성장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어 추진했고, 수출 중심 산업화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에서 산업 강국으로 일어섰습니다. 이 눈부신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1970~80년대 한국 기업들은 가난한 나라가 해낼 수 있으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던 조선·자동차·철강·전자 산업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땀과 끊임없는 배움으로 이들은 세계 정상급 기업으로 자라났습니다.
산업화로 교육받은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한국인들은 더 온전한 민주주의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1987년 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자리 잡으며 민주주의가 굳게 뿌리내렸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새롭고 자신감 있는 한국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후 한국은 OECD에 가입했고, 1997년 외환위기를 온 국민이 함께 이겨 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습니다.
K-pop, 드라마, 영화와 기술 브랜드가 한국을 세계적 문화·경제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연결된 사회 가운데 하나이자 첨단 제품의 주요 수출국입니다.